그는 이따금씩 옛날이야기 같은 것을 해주고는 했다. 그의 인형은 그가 해주는 이야기들에 흥미가 있었다. 여태까지 보거나 대화할 수 있는 인간이 그 한 명 뿐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지식은 모두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위한 존재이며, 어떠한 존재인지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만은 확실한 진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인형이라는 만들어진 존재니까. 그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냐는 건 굳이 고민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 사람 하나와 인형 하나는 제작자, 혹은 주인님과 인형이라는 관계일 테지만 그는 주인님이라고 부를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저 활짝 웃으며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인형은 그러겠다고 했다. 호칭은 아무래도 좋으며, 제작자의 말에 거스를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에 의한 창조물이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제공받을 수 없는 한낱 물건에 불과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인형은 자신의 지정석 같은 곳에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집은 그의 작업 공간 외에는 깔끔한 편이었다.
이번에 그가 해준 이야기는 먼 옛날의 신화의 한 종류였다. 아름다운 여자를 조각한 한 남자는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고, 신에게 빈 결과 결국에는 조각상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인형은 곧 그 생각을 정정했다. 그런 비슷한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존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먼 옛날에도 료타 같은 사람이 있었구나.”
인형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였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신에게 빌었다, 같은 건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여태껏 가장 곁에서 그를 보아온 바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사람이니까요.”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해.”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 걱정 말아요.”
나는 키세 료타라고 해요! 예전에,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고하던 그는 인형에게 곧바로 아카시 세이쥬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만들기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인형은 제 이름을 기억했다. 갓 깨어났다고는 해도 기초적인 약간의 지식은 가지고 있던 인형에게 그리 어려운 이름은 아니었다. 게다가 제 외형과도 잘 맞는 이름이었다. 키세의 취향이었는지, 그저 이 색이 구하기가 쉬워서였는지,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모두 붉은색이었다. 어쩌면 이름과 일부러 맞춘 것일 수도 있었다. 이름은 전부터 지어뒀다고 그가 말했으니.
아카시는 키세 옆에 있으면 작은 체구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평범한, 혹은 조금 작은 남자 정도의 크기는 되지 않겠냐고 키세는 말했다. 아카시에겐 비교할 대상이 키세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정도로 인지했다. 인형이란 건 원래 사람 크기인 것인가. 무엇보다도 크기는 지내는 데에 크게 상관이 없기도 했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의 크기이기에 생활하기는 편했다.
키세는 그렇게 자주 외출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예 집에만 박혀 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물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주로 늦은 밤인 시간이었다. 빨리 돌아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오래 걸리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키세는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아카싯치를 위한 재료를 사왔다고 매 번 말했다. 그래서 아카시는 그가 돌아오면 오늘은 뭘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그리고 정말 외출했다 오는 날이면 아카시에게 무언가를 추가해주곤 했다. 놀라울 만큼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가 있었다. 가령, 눈 색을 바꾼다거나 하는 것조차. 눈을 갈아 끼우면 되는 거니 나중에 그 색이 질리면 나한테 말해줘요, 하고 말했던 적도 있었다. 아카시는 지금의 자신의 외형에 아무런 불만도 없었기에 알았다고만 했다. 키세는 늘 무언가 해주고 싶어했다. 제작사로서의 애정 같은 건가. 아카시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카시에게 있어선 평생 이해하지 못할 무언가였다.
아카시는 단 한 번도 바깥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가끔 조그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과, 티비에 나오는 것이 아카시가 아는 바깥 세계의 전부였다. 키세는 딱히 외출하고 난 뒤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아카시도 그것을 크게 궁금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화할 상대라면 키세가 있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인간이 아닌 이상 한 곳에만 있는다고 해서 큰 불편을 느낄 것도 없었다. 그리 좁지는 않은 집안만이 아카시가 아는 모든 세계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아카시가 처음으로 바깥에 호기심을 느꼈던 것은 키세의 외출이 조금 잦아졌을 때였다.
“요즘 자주 나가는 것 같네.”
“아, 일이 있어서요. 조금…….”
“바깥엔 재밌는 거라도 있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말하고도 아카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이렇게 바깥에 대해 생각했었던가? 곧 아카시는 키세가 바깥에서 흥미 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조금 전의 자신을 추측했다. 말을 걸 수 있는 상대가 키세밖에 없는 만큼, 키세가 없으면 자신은 확실히 외로움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가끔 나가는 건, 보통 아카시가 잠이 들 시간에 나갔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었다. 키세가 들어오면 인기척에 자다가도 잠이 깨긴 했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키세는 최대한 자신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조심조심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이상하게도, 나가는 시간이 완전히 달라졌다. 잠에서 깨면 집에 키세가 없었다. 그건 아카시에게 있어서 굉장히 낯선 환경이었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인형은 어떻게 보자면 아이와도 비슷했고, 그는 부모 같은 존재일 수도 있었기에.
“재밌는 게 있어서 나가는 건 아닌데요…….”
어디까지나 중요한 일 때문이라고 키세는 답했다. 그 중요한 일이 뭔지는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아카시는 키세를 빤히 올려다봤다. 눈에는 약간의 불만이 들어있었다.
“나가보고 싶어.”
2014.11.30
적우 온리 신간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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