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편안하게 누워서 어제 사온 신간이나 읽고 싶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마유즈미 치히로는 한껏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표정은 여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마유즈미
선배. 그새 바뀐 표정을 눈치챈 아카시는 아이를 타이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런 건 귀신같이 알아챈단 말이야. 계속 다른
곳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안 건지. 지금 당장 불만을 말하라고 한다면 한참을 말할 수도 있을만큼의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유즈미는 절대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물론 굳이 말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속임수를 쓰는 건지 다 알아차리는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있으니 그것도 무의미하다면 무의미한 짓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를 5가지만 말해 봐."
"마유즈미 선배가 정말로 듣고 싶으시다면야, 5가지가 아니라 더 많이도 들려드릴 수 있겠지만."
아카시는 여전히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천천히, 섬세하게.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준비해달라고 한 게 누구였더라. 주위에 시계가 없으니 시간을 볼 수도 없어서 그 때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 빨리 납득시켜."
"아마도 포기하시는 쪽이 빠르다는 걸 깨닫게 해드리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
힐끔 바라본 아카시는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제멋대로인건 똑같군. 마유즈미는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누가 둘이라고 했던가. 결국 본질은 같은 것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카시는 아까보다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아직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도 다 채우지 않은 채였다. 어디 도망이라도 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뭔지는 모르지만, 굳이 손수 넥타이를 매주겠다고 해놓고서. 보통 다른 사람의 준비를 도와줄 때는 먼저 준비를 끝내놓고 하는 게 아닌가? 마유즈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넥타이."
"조금 전에 매드렸을 텐데요."
"나말고, 너 말야."
마유즈미의 당당한 요구에 아카시는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머리도 좋은 주제에 이런 건 둔하다. 아니면 일부러 둔한 척을 하는 건지.
"아직 안 맨 걸 지적하고 싶은 거라면, 셔츠를 정리하고 나서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
"달라니까."
아마도 둔한 척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카시에게서 넥타이를 빼앗듯이 받아들고서 마유즈미는 눈만 깜박이고 있는 아카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거 혹시. 아까 자신이 했던 걸 그대로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아카시는 다가온 마유즈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건 제가 할 수 있는데. 아카시는 변명하듯 말했다. 당연히 할 수야 있겠지. 누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한 건가? 마유즈미는 가볍게 그 말을 무시하고 손을 뻗었다.
넥타이를 매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 매일 아침 교복 넥타이를 혼자 맸으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매준 건 처음인가.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손을 움직이고 있으니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카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다 보인다고 해도 누구처럼 표정만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버릴만한 능력같은 건 없지만. 자, 다 됐으니까 정신차려. 아까 아카시가 정리하다가 만 셔츠를 대충 정리해주고 마유즈미는 손을 뗐다. 아카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까 포기하는 게 빠르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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