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같은 건반을 누르면 같은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과연 그럴까? 니지무라 슈조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누가 치느냐에 따른 느낌은 다르다. 그것이 여태껏 수년 간 피아노를 치면서 생각한 것이고, 또 실제로 느낀 것이었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악보만 가져다준다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치면서도 전혀 다른 음색을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의 연주를 듣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들리는 소리가 그러한 종류의 것이라 니지무라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전에 쓰던 연습실을 지금 쓰는 사람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나 소리의 근원지를 잘못 짚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니지무라는 소리가 들리는 대로 홀린 듯이 움직였다. 처음 듣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하게 귓가에 다가왔다. 대체 누가 이런 연주를. 피아노 소리가 가장 가까이 들리는 곳에서 니지무라는 발을 멈췄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깥에선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봐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까 하던 차에, 갑자기 소리가 끊겼다. 문고리로 향하던 손을 움찔하고 내려놓았다.
발소리를 들었나? 본의 아니게 방해해버린 건가? 안에 있는 연주자가 자신이 온 걸 알고 연주를 멈춰 버린 거라 판단하고 니지무라는 잠시 문 앞에서 망설였다. 그래도 역시, 이대로 그냥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런 연주를 하는 사람의 얼굴 정도는 보고 싶었다. 조용한 혼자의 시간을 방해한 방해꾼 취급을 받더라도.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아직도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거겠지. 저쪽에서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누구신데 나타나서 방해했냐며 악보로 맞아도 크게 할 말은 없었다. 아니, 딱히 그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닌데.
아는 사람이 본다면 놀랄 정도로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니지무라는 문을 열었다. 아차. 노크부터 했어야 하나. 이제 와서 뭔가 중요한 게 기억이 난 것 같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실례…….”
어? 최대한 문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열고 고개를 든 니지무라의 앞에는 커다란 피아노와, 그 앞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빠진 소리를 낸 니지무라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그 학생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찬찬히 니지무라를 보고만 있었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를 얼굴이었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니지무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금방 연주한 게 너냐?”
질문이 이상했는지 그제야 아무것도 없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작게 웃음소리도 났다.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인상이 섞여있던 얼굴과는 달리 얌전한 목소리였다.
“……비밀입니다.”
여기에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한 명 밖에 없는데 비밀은 무슨 비밀이야. 니지무라는 아직도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 바로 앞까지 가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낡은 악보 하나가 눈에 곧바로 들어왔다. 곡 제목은 손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아까 연주했던 그 곡의 악보가 저것인 듯 했다. 그런 대답을 할 거라면 좀 더 제대로 숨겼어야지. 니지무라는 못 본 척 해주기로 하고서 시선을 아래쪽에서 쭉 올렸다.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 굉장히 튀어보였다. 고양이 같기도 하고, 어려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보다 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신입생?”
“…….”
“……?”
“아뇨. 그저 학년이 달라서 처음 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잠시 망설이던 틈을 제 학년도 까먹어서 고민한 거라고 생각한 건지 니지무라는 측은한 눈을 했다. 그게 무슨 뜻을 담고 있는 눈인지 딱히 알아차리지 못한 그는 악보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내며 별 일 없었다는 양 눈웃음을 지었다.
“이름은 알려드릴 수 있는데.”
“그래놓고 또 비밀이라고 할 거잖아.”
“그런 걸로 장난치진 않아요.”
선배.
어?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자연스럽게 선배라고 칭하는 그를 보며 니지무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그렇게 나이 들어 보였나. 그가 말한 대로 2학년이라면 선배는 맞지만. 그래도. 그럼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 의도를 먼저 알아차린 듯 묻지도 않은 말에 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카시 세이쥬로.”
2014.02.23
아카시 온리 트윈지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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