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고양이를 키웠던 적이 있었어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이 상황과 전혀 연관을 지을만한 것도
없었다. 그저 나오는 대로 말했을 뿐인 의미없는 말. 무심코 내뱉은 자신조차도 왜 그런 말을 했나 싶어 잠시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있었더니, 오히려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에는 조금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상대가 먼저 왜 말을 하다마냐는 식으로 물어왔다.
그래서, 어땠습니까. 그의 말에 당황한 것은 자신쪽이었다. ……듣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잖아요. 꼭 말을 해야하는 겁니까? ……아뇨, 됐어요.
그다지 이런 쓸데없는 것으로 굳이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은 상대다. 키 차이가 나는 그를 올려다보고 한숨을 푹 쉬었더니
어린애가 벌써부터 한숨 쉬지 말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애 아니에요, 몇 번을 말해도 도저히 들어주질 않는다. 그에 비하면 한참
어린애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괜히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늘 어린애 취급하며 제대로 봐주질 않는 그에 대한
오기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뿐이고,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옆에 던져져 있던 베개인지 쿠션인지 모를 것을 집어 끌어안았다. 푹신한 느낌에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고양이가 말이에요.
한참 어릴적의 기억을 떠올려가며 말하다가, 나는 왜 고양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고 한참 하던
말을 멈추면 그는 왜 멈추냐는 식으로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말하면서 그를 올려다봐도 전혀 흥미가 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얼른 이야기를 끝내던지 화제를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시키나리는 말예요. 고양이같은건 키워본 적 없어요?"
"없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단답형이지만, 막상 현실로 돌아오니 애써 물어본 자신이 어쩐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래, 이 남자를 상대로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이렇게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 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은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더
물어봤자 더 긴 대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 정도겠지. 이래서야 질문하는 사람도
재미가 없다. 전혀 배려라고는 없는 사람같으니.
"그럼 됐어요. 전 잘래요."
더 말하고 싶은 마음도 뭣도 생기지 않아 그대로 풀썩 누워선 일부러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한참을 그렇게 있어도 깨우려는 손길은
커녕 일어나라는 말 한 마디조차도 없다. 아, 됐어. 진짜 잘거니까! 나가던지 말던지 어디 가버리던지 알아서 하라 그래! 속으로
외치고는 안고 있던 것을 꼭 끌어안았다. 마음같아선 여기서 나가버리고 싶었다. 그래봤자 그는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 뻔한
결말에 헛웃음까지 난다. 처음부터 매달리는 것은 자신이었지 그가 아니었다. 당연한 진실을 이제와서 상기시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바보같기는. 오리하라 이자야, 이 멍청한 놈아.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놓고 이게 무슨 꼴이냐. 한없이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던 것은 낯익은 벨소리가 들려서였다. 시끄러운 타입의 벨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잠결에 들었던 소리여서인지
굉장히 귀에 거슬렸다. 다행인건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몸을 둥글게 말았을 때쯤 그 소리가 끊겼다는 것이지만. 뒤이어 누군가
통화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늘 같은 톤, 같은 목소리, 같은 말투. 언제나 그는 그랬다. 흐트러지는 일 없이, 변화하는 일
없이, 항상 그 자리에서 그대로. 분명 일 탓이겠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통화가 끊기고, 잠에서 깼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눈치 하나는 빠른 사람이다. 그렇게 자면 감기 걸립니다. 걱정인지, 그냥 예의상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그 말에는 대답하고 자는 척 했다. 그러면, 깬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이 돌아온다.
"깨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신경도 안 쓰면서."
더 자는 척하는 것도 귀찮아져, 벌떡 일어나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겨우 이 정도가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반항의 전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들었다간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따분한 관계가 어디 또 있을까.
"그보다, 오늘은 왜 안 나갔어요? 아까 일때문에 전화 온 거잖아요."
"오리하라 씨가 일어나지 않은 덕분에."
"……무슨 의미예요?"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 그래도 도저히 숨은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안 일어났는데 뭐? 아니 그보다, 그렇게 오래 잔건가?
대체 무슨 말이예요, 물어보려고 했으나 걸쳐뒀던 겉옷을 입곤 나갈 채비를 하는 그의 뒷모습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싶어 무심코 시계를 쳐다봤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바빠요? 원래 묻고 싶었던 것은
이미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는지 전혀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계속 시간을 늦춰서 말이죠. 마침 아슬아슬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번엔 더
늦출 수 없었으니까요. ……. 그럼, 깨우면 되는 거였잖아요.
그에 대한 대답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항상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열쇠를 챙기는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오늘 안에는
돌아오지 않을 예정인 것 같았다. 왜. 왜 신경써주는 척 해요. 차라리 한결같이 신경쓰지 않으면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하니까
늘……. 하지만 그 말은 소리로 나오지 않았고, 이상하리만치 크게 들린 문이 닫히는 소리에 가려 사라져버렸다.
오늘따라 혼자 남은 집 안이 넓게 느껴졌다.
201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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