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멀리 가시면 안 됩니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사람도 많고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여자의 작은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었다. 누가 내게 말을 했던 것 같다고 깨닫고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 밀려 아는 얼굴을 놓친 뒤였다. 끊임없이 밀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자신에게 말을 했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곤란하지 않을까. 여기서 집을 찾아가지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은 괜찮겠지만, 데리고 나온 하인의 입장에서는 곤란할 게 분명했다. 여기 계속 서있다 보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터벅터벅 걷다가, 어느새 주위의 사람이 적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잘 모르는 곳에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섣불리 다시 어디론가 가다가는 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가만히 서있는 게 최선이거나, 누구라도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 게 먼저다. 작은 소년은 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대체 어디서 어디로 들어오면,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 수 있는걸까.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쯤에, 주위의 나무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많이 사는 마을이다. 커다란 산짐승 같은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테지. 그렇다면 여기서 큰길로 나가는 방법을 물어보자. 그러면 아까 헤어진 사람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나 저 뒤에 있는 것이 토끼같은 작은 짐승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단 확인하고나서 생각하면 된다.
소년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겨 나무 가까이에 다가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무 뒤에서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좋을텐데. 소리가 나는 쪽에 가까이 가서 보니 누군가 있었다.
아니,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사람? 그의 붉은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순간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쓸데없는 생각일테니 곧 잊어버렸다. 그럼 저것이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붉은색 눈동자,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 자신의 머리카락도 꽤나 특이한 색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태 저런 색의 머리카락은 본 적이 없다. 선명한 붉은색의 머리카락이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경계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도 않았다. 한참을 서로 바라보고만 있다가, 소년은 먼저 하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그가 대답을 하려 입을 열었을 때는, 사람의 것이 아닌 언어가 나올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현실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하필이면 사람도 잘 오지 않는 곳에…… 길을 잃은 모양이네."
그는 짧게 감상을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길을 가르쳐주었다. 조금 더 큰 키, 그리고 묘한 분위기나 표정, 얼굴. 그를 잠시 살펴보던 소년은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판단했다. 그렇겠지. 아직 자신은 어리니까. 소년은 그에게 감사를 표하려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서 가봐. 누군가 널 찾고 있을 거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누군가 찾고 있는 건 맞겠지. 소년은 그가 가르쳐준 길로 가려다 말고 뒤로 돌았다. 본 적이 없는 색의 머리카락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 지역의 사람이 아닌걸까.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지리를 잘 알고 있는걸까.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어디에 살고 있지?"
다짜고짜 질문이냐고, 그는 되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왜 갑자기 그걸 입으로 내어 물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대답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궁금해서, 먼저 질문을 해놓고도 눈치를 보는 소년의 모습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가락으로 나무들이 가득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숲 속."
"숲 속?"
"그래. 사람이 닿지 않는 깊은 숲 속."
숲 속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쳐도, 뒤의 말이 신경쓰였다. 사람이 닿지 않는. 사람이, 오지 않는. 사람이면서 타인과 섞여 사는 것을 싫어하기라도 하는건가?
"…… 왜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거지?"
그 질문에 대해 그는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의미를 알 수 없게, 그리고 사람을 홀릴 것처럼 웃은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우니까."
(중략)
누군가 집에 초대되어 온다는 말을 들었다. 나라에서 이름이 꽤나 알려진 악기 연주자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오냐고 물으려고 했다가 미도리마는 입을 다물었다. 집안에 권력과 재력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물론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별로 그런 것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미도리마는 그런가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다만 자신이 그런 것과는 반대로, 집안은 연회라도 열 것 마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게 신경 쓰인다면 신경 쓰이는 사항이었다.
악기라.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일까. 아예 관심을 끄려다가 미도리마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려냈다. 어릴 적에 어렴풋이 들었던 악기 소리. 지금도 눈앞에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의, 누군가를 만났던 어릴 적의 밤. 그 소리는 어떤 악기의 소리였는지. 혹시라도 오늘 온다는 그 사람이, 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흥미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어떤 악기였는지 모르니 직접 연주하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맞는지 아닌지 모르는 게 문제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금 기대되는 마음으로 미도리마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직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하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손님이 올 시간이 다가와 더 바빠진 집안의 분위기를 뒤로 하고, 미도리마는 자신의 방에 앉아 조용히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책상에 똑바로 앉아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던 것을 보면 그렇다. 잠이 덜 깨서 천천히 눈을 깜박이던 미도리마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낯익은 소리. 그것은 분명 어릴 적에 들었던 그 소리였다. 그 때는 멀리서 들렸기에 잘 들리지 않았긴 해도 지금 들리는 이것과 어릴 적의 그것이 같은 악기가 내는 소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누가 연주하고 있는 거지? 미도리마는 밖으로 나와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홀리듯 걸어가니 누군가가 커다란 악기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고서 연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에는 집안의 사람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사람들에 가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미도리마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었던 선명한 붉은색의 머리카락.
그 사람은 자신의 손끝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는 듯 눈을 반쯤 감은 채, 능숙하게 줄을 튕기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2013.06.17
6월 적우온리 녹적 신간 샘플
아카시가 여우.
'~2013 > krb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녹적] 変わらないもの (0) | 2017.05.14 |
|---|---|
| [황적] longing (0) | 2016.01.12 |
| [청황] 交わらないふたつの世界 (0) | 2016.01.12 |
| [청황] 泣いたのは誰のせいで (0) | 2016.01.12 |
| [녹적] たったひとつの触れる方法 (0) | 2016.01.12 |
